트랜스쿨

  • 번역가 길러낼 전문기관 세워야 중앙일보[2001.02.09]
 

[기초를 다지자] 34. 엉터리 번역물

'무삭제 완역판' 이라는 이름을 버젓이 달고 두세 곳 출판사에서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작 『걸리버여행기』가 나왔다. 나는 그 책의 내용을 원문과 꼼꼼히 대조해 보면서 여러 차례 놀랐다.
원문을 마구 빠뜨린 것은 물론 엉뚱하게 번역한 대목이 너무 많아 거의 파본(破本) 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런 식의 그릇된 번역관행은 원작을 모독하고 독자를 속임은 물론 출판문화의 기초를 허무는 결과를 빚는다.
원작 중 걸리버 선장의 편지에 '스미드필드 지역에서 법률서적이 산더미처럼 쌓여서 불타버릴 때' 라는 부분은 놀랍게도 '스미스필드 지역이 법률서적의 금자탑으로 빛날 때' 로 번역돼 있다.
또 '항해의 상이한 항로와 화물들' 이라는 대목은 어찌된 셈인지 '항해의 변주곡과 방패문장' 으로 번역됐다.
오늘날 일본이 세계 최강의 경제대국이 된 것은 명치유신 이후 모든 분야에 걸친 외국서적을 국민에게 집중적으로 아주 성실하게 번역, 보급해온 결과다. 일본에서 노벨문학상이 두 번이나 나온 것은 바로 번역문학의 기초 위에서 가능했다.
나는 외교관인 친구로부터 파리에서 제일 큰 서점에 들어가 보고 실망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일본문학 코너가 별도로 있을 정도로 번역된 일본작품이 많았다고 한다.
반면 우리 문학작품은 기타 코너에, 그것도 맨 밑바닥에 4~5권 정도 꽂혀 있었다는 것이다. 영국의 하이네만 출판사는 아프리카 작가들의 작품을 3백여 종이나 영어로 출판했다.
그런데 서울의 대형서점에 가보면 더욱 실망한다. 우리 작품이 외국어로 번역된 것을 찾아보면 20여권에 불과하다. 한국방문의 해나 2002년 월드컵이 무색하다. 제대로 된 번역물을 많이 내는 게 국제경쟁력의 원천이 아니겠는가.

이동진 <전 대사, 번역문학가.해누리기획 편집인>

[기초를 다지자] 번역가 길러낼 전문기관 세워야

튼튼한 집을 지으려면 정교한 설계와 기초공사가 필요한 것은 상식이다.
번역이 바로 그렇다. '탄탄한 기초' 란 무엇일까. 우선 국내 단행본 출판의 경우 영어.일어 등 번역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60%에 달한다.
이런 물량을 제대로 소화하기 위해서는 번역을 대학교수들의 연구업적으로 인정해 주는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 시급하다. 그래야 날림 번역, 제자들이 해주는 졸속 번역이 사라질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국내에 번역 전문가 양성기관이 단 한 곳도 없다는 점이다.
전문성을 요구하는 번역가를 길러내려는 노력없이 개인적 역량에만 의존하고 있다. 번역왕국 일본을 지탱하는 번역가 전문 양성학원 '바벨' 의 존재를 한국 사회는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2백자 원고지 한장에 1천~2천원밖에 안주는 번역료도 번역의 기초를 허무는 중대 요소다. 출판사의 과감한 투자가 요구된다.

양원곤 <인터넷 번역학원 '엔터스 코리아' 대표>